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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기 장례 현장 선화장 후장례 시절의 아픈 기록

by 동네반장장례지도사 2026. 6. 21.

코로나 시기 선화장 후장례 사진

장례지도사로 오랜 기간 일하며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 많은 감염병들을 마주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장례 현장은 가장 깊고 참담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감염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방역 지침 아래, 고인을 인간으로서 예우하는 일과 철저한 위생 관리를 동시에 해내야 했던 치열한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시신처리 절차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보겠습니다.

 

당시 정부의 기본 지침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선화장(先火葬) 후장례(後葬禮)였습니다. 고인의 임종 직후 유가족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신을 먼저 화장장으로 모시고, 납골한 후 유가족만 장례를 치르는 전대미문의 방식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장례 일반 장례와 무엇이 달랐나

구분 일반 장례 코로나 시기 장례
장례 순서 빈소 → 입관 → 발인 → 화장 선화장 → 납골 후 장례
염습 수의 및 관 사용 염습 생략, 시신백 사용 관밀봉
유가족 참여 입관식 참여 가능 유리창 너머로만 가능
조문객 제한 없음 최소화 또는 사양
장례지도사 복장 일반 복장 레벨D 방호복, 이중 장갑, N95 마스크

방호복 속의 땀방울 코로나 시신처리 절차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하신 고인의 시신처리는 일반 장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장례지도사들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벨D 방호복과 덧신, 이중 장갑, N95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더위와 숨 막히는 방호복 속에서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지만 고인을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버텼습니다.

 

시신 처리의 핵심은 감염원 차단이었습니다. 병원 격리병동이나 안치실에서부터 특수 소독액으로 전신을 철저히 소독했습니다. 체액 누출을 막기 위한 위생 처리를 마친 후, 바이러스가 외부로 방출되지 않도록 특수 제작된 시신 백에 고인을 모시고 지퍼 부위를 다시 한번 밀봉 소독했습니다. 일반적인 염습처럼 고인의 몸을 정성껏 씻기고 수의를 입혀드리는 과정이 완전히 제한되었기에, 고인을 위한 염습절차는 완전히 생략하고 시신백 상태로 입관하고 관에 밀봉했습니다. 

유리창 너머의 마지막 인사

당시 유가족들은 감염 예방을 위해 안치실 내부로 들어오거나 고인의 얼굴을 직접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격리된 탓에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마지막 발인조차 지켜보지 못하는 유가족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가족들이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안치실 밖 유리창을 통해서뿐이었습니다.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던 22년 1월 겨울날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코로나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고, 할아버지와 유가족들은 밀접 접촉자로 격리되어 계시다가 간신히 한 분만 코로나 미감염이라는 허가를 받아 안치실 밖에 홀로 서셨습니다. 조문객도 없고 다른 가족도 없이 방호복을 입은 저와 할아버지만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두꺼운 유리창에 손을 얹으시더니 "여보, 이게 대체 무슨일이고, 이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하다"라며 오열하셨습니다. 그 거친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합니다. 비록 마지막 예의로 염습은 해드리지 못했지만, 관 주위를 생전에 할머니가 좋아하셨다던 국화꽃으로 가득 채워드렸습니다. 그게 그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장례지도사의 혼돈과 희생

문제는 이런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초기부터 장례지도사들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야 할 필수 지침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인을 평소처럼 입관하다 코로나에 걸린 지도사도 많았고, 지침이 마련된 이후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신을 운구하였으나 그 자체로 체력과의 전쟁였습니다. 24시간 부족할 정도로 사망자가 속출했던 것입니다. 입관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갑작스런 사망자 증가로 화장장 예약 대란이 벌어져 4~5일장은 기본이었고 안치실도 부족해 심지여 어느 장례식장에서는 시신을 운구차에 보관한다는 뉴스도 나오는 상황였습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코로나 감염으로 한꺼번에 사망하시면서 부모님이 며칠 차이로 한꺼번에 돌아가시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은 오열할 틈도 없이 자신들의 코로나 감염여부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빈소를 마련한 유가족도 답답할 노릇이었고 장례식장 마찬가지였습니다. 상가에 맞추어 음식을 준비할 수도 없고 안치만 했다가 겨우겨우 입관만 하고 발인하는 장례가 갑자기 늘어나 장례식장은 늘 포화상태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부고 문화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변화된 것이 만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부고 문화 인데요 문자에 계좌번호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에는 부고장에 계좌번호를 넣는 것이 버릇없어 보인다, 무례하다는 인식이 강해 넣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조의금은 직접 빈소에 와서 전달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 거리두기 문화로 조문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계좌 이체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고 문자에 "조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그 당시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모두가 돌아다니기를 꺼려하던 때 오히려 이 문구가 없으면 어색할 정도가 됐습니다. 코로나가 끝난 지금도 계좌번호를 부고장에 넣는 문화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편하다고 여겨졌던 문화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위생은 존엄한 이별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코로나19라는 혹독한 시기를 지나오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의 철저한 위생 관리가 형식적인 방역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있는 장례지도사와 남겨진 유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고인이 존엄하게 마지막을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돕는 예의이기도 합니다.

 

비록 가장 혹독하고 외로운 형태의 장례였지만, 그 안에서 장례지도사가 발휘해야 하는 진정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제한될지라도, 고인을 향한 엄숙한 마음과 엄격한 위생 습관이 받쳐줄 때 비로소 유가족의 깊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배웠습니다.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시절이 남긴 것들은 지금도 현장에 살아 있습니다.

 

▶ 팬데믹 이후 변화된 장례 문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가족장이 늘어나는 현실적인 이유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장례 위생 관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장례식장 시신 위생관리 안치부터 염습까지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출처
· 보건복지부 공식 홈페이지
· 질병관리청 공식 홈페이지
·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 본 콘텐츠는 장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된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정보 공유 글입니다. 개개인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니, 구체적인 장례 준비 시에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하여 진행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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